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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자랑스런 인물과 일화옛날옛적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성남의 인물과 설화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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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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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자수
  • 간략설명
    김자수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살았던 성남출신의 문신입니다.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 호는 상촌이며, 아버지는 통례문부사 지제고(관직 이름)를 지낸 김오입니다.
    인물소개
    김자수는 고려 공민왕 때(1374년) 문과에 급제하여 덕녕부주부(관직 이름)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왕이 바뀌어 우왕을 모시게 된 그는 정언(관직 이름)이라는 벼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우왕이 김자수에게 왜적을 무찌른 공으로 포상을 받은 경상도 도순문사(관직 이름) 조민수의 편지에 답장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김자수는 조민수가 전날 김해·대구에서 있었던 왜적과의 전투에서 도망갔고, 오히려 많은 병사를 죽게 했기 때문에 답장을 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왕의 명령을 거절한 죄를 짓게 된 김자수는 전라도 돌산에 유배되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김자수는 전교부령(관직 이름)을 거쳐 판사재시사(관직 이름)가 되고, 공양왕 때에는 대사성·세자좌보덕(관직 이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1392년에는 판전교시사(관직 이름)가 되어 좌상시(관직 이름)로 관직이 옮겨졌으며, 충청도 관찰사·형조판서(관직 이름)에 이르는 등 많은 관직을 거쳤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김자수는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으로 내려가 조용히 숨어 살았습니다. 결국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졌는데, 조선의 왕이었던 태종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형조판서(관직 이름)의 자리에 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자수는 관직을 사양하고, 자손들에게 묘비를 만들지 말라는 유언만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람들은 두 나라를 섬기지 않고 자결한 그를 가리켜 ‘절의충신’이라고 칭송했으며, 현재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에는 그의 유언대로 묘비 없는 묘가 있는데, 경기도 기념물 제98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