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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자랑스런 인물과 일화옛날옛적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성남의 인물과 설화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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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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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설명
이지직은 성남 지역 출신의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살았던 문신이자 유학자입니다.
가계
본관은 광주, 자는 백평, 호는 탄천입니다.
이당의 손자이며, 판전교시사 둔촌 이집의 아들입니다.
인물소개
1354년 고려 시대에 태어난 이지직은 26살 때 문과에 2등으로 급제하여 한림원학사(관직 이름)를 시작으로 많은 관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의 관리가 된 이지직은 1398년 태조 임금 때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를 고치기 위하여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이지직은 벌을 받을 위험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이때 이방원과 변춘정이 그를 감싸주어 가벼운 처벌만 받게 된 이지직은 광주의 탄천에 숨어 살며 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이때부터 그에게 학문을 배우러 탄천으로 찾아왔던 사람들은 그를 ‘탄천선생’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419년에 이지직은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의 명령에 따라 형조참의라는 관직을 맡게 되었으나 직책을 맡아 일하지는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은 후에 올바르게 살았다는 것을 인정받아 청백리로 뽑혔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추증: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벼슬을 높여 주는 일
성남과의
인연
성남 지역 출신이었던 그는 죽은 후 고향에 묻혔으며, 현재 그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3-1에 있는 광주이씨 묘역에 있습니다.